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빙그레 이글스 (문단 편집) === 1989년 === 신인드래프트에서 투수 [[진정필]]과 유격수 [[황대연]], 3루수 [[강석천]]을 1차지명했다. 2차지명으로는 2루수 이종호, 투수 김락기, 포수 박선일 등을 지명했다. 지난해 중반 송일섭을 현금 트레이드 영입한 가운데 빙그레 원년 멤버인 [[이광근]], [[천창호]], [[김한근]]을 태평양으로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시켰다. 지난해에 지명해놓고 국가대표 차출로 입단하지 못했던 송진우는 이 해부터 빙그레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빙그레 원년부터 원투펀치였던 이상군과 한희민이 나란히 원투펀치로 활약했던 마지막 시즌이다. 이상군이 16승 5패 3세이브 방어율 2.57, 한희민이 16승4패 6세이브 방어율 2.50을 기록하며 각각 팀내 공동 다승 1위에 리그 전체 다승 공동3위로 마운드의 구심점이 되었다. 송진우는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9승 10패 9세이브 방어율 2.81로 신인으로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김락기는 1989년 한해 반짝하며 8승에 방어율 2.67로 투수진의 한 축을 맡아줬다. 그 외에는 각각 7승과 6승을 올린 김대중과 김홍명이 있었고, 계투진에서는 한용덕, 진정필, 장정순, 이동석이 뒷심을 보였다. 타선에서는 [[고원부]]가 .327의 타율로 '''이글스 역사상 첫 타격왕'''이 되었다.[* 그러나 타격왕 경쟁 과정에서 김영덕 감독이 경기장에서 계산기를 쳐 가면서 타석 출장 여부를 결정하는 '타율 관리'로 인해 언론과 야구팬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유승안]]은 21홈런으로 팀 역사상 20홈런을 돌파한 첫 타자가 됨과 동시에 팀내 최다 홈런을 기록했고 85타점을 기록하며 '''이글스 역사상 첫 타점왕'''이 되고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무엇보다도 1989년 5월 9일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선동열]]을 상대로 최초의 만루홈런을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강돈]]은 타율은 .295로 3할에 미치지 못했지만 137개의 안타로 리그 최다 안타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정훈이 어깨 부상으로 51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이중화]]와 송일섭이 각각 .295의 타율과 25개의 도루[* 그 중 21연속 도루에 성공했다.], .330의 타율로 그의 자리를 잘 메웠다. 2루에서는 [[조양근]]이 20도루로 좋은 활약을 했다. 3루에서는 김성갑이 주전인 가운데 아쉬운 타율을 좋은 선구안으로 만회, 중심타선 앞에 주자로 출루를 많이 했고, 신예 강석천이 뛰어난 타격으로 호시탐탐 주전을 위협했다. 유격수 [[장종훈]]은 18홈런으로 리그 전체 홈런 4위에 오르며 활약했고 신인 [[황대연]]은 유격수 수비가 다소 불안했던 장종훈의 백업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1루는 강정길과 전대영이 든든하게 지켰다. 팀 타율과 팀 OPS, 팀 홈런은 .276과 .757, 97개로 1위였다. 다만 투수력은 나쁘진 않았지만 방어율 3.50으로 태평양과 해태에 밀려 3위였다. 탄탄한 야수와 투수의 뎁스로 인한 뛰어난 투타 밸런스에 힘입어 빙그레는 프로야구의 첫 단일리그 체제에서 120전 71승 46패 3무, 창단 첫 6할 승률을 달성했고, 2위 해태와는 5.5경기의 차이를 보였다. 상대전적이 가장 강했던 [[MBC 청룡]]을 상대로는 16승1무3패로 압도했다. 그러나 이 해 PO 일정이 좀 묘했는데, KBO가 짜 놓은 PO 일정은 10월 14일부터 10월 21일까지였고, 한국시리즈는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였다. 즉, PO가 5차전까지 가도 PO 승자는 5일을 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1위팀은 경기 감각적인 면에서 불리할 수 있었다. 과거와 다른 단일시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인데, 이 때문에 해태는 2위로 올라가 경기 경험을 쌓고 한국시리즈에 임하면 불리하지 않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마침 PO 상대도 돌풍을 일으키며 올라온 태평양 돌핀스였고, 태평양은 이미 준PO에서 삼성과의 혈투 속에 그 해 19승을 거둔 박정현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투수진을 소모한 상황이었다. 해태는 가볍게 태평양을 3:0으로 스윕하며 올라갔지만, 그 속에서 타선이 생각보다 터지지 않는 것은 걱정거리였다. 반대로 빙그레는 껄끄러운 해태가 올라왔고, 경기 감각이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그 해 가장 강력했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우려했던 경기 감각이 시리즈 내내 빙그레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10월 26일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원투펀치 중 하나인 [[이상군]]을 내보낸 가운데 이강돈이 [[선동열]]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며 4:0 승리로 기분좋게 시작하며 이번에는 작년의 준우승을 설욕하는 듯 했다. 다음날 해태는 조계현, 빙그레는 한용덕이 선발로 등판했는데 빙그레는 1회초 선제 실점 이후 1회말 단숨에 4점을 내며 1:4로 역전했다. 2회초 해태에 1점을 허용했고 3회초에도 1사 만루를 허용했으나 백인호의 타구는 유격수 방면으로 이지땅볼 병살타구가 되어 위기를 넘기는듯 했으나... 유격수 [[장종훈]]이 알을 까고 말았다. 이 통한의 알까기로 그대로 동점을 허용했고, 이어지는 찬스에서 희생플라이가 나오며 간단히 역전당하고 말았다. 결국 2차전은 장종훈의 실책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급락하며 신동수-이강철을 공략하지 못하고 6:4로 져 시리즈의 전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경기를 어이없게 날리고 말았다. 10월 29일 광주에서의 3차전은 에이스 한희민을 등판시켰으나 지난해 한국시리즈 MVP [[문희수]]에게 7이닝 무실점으로 끌려가고 8회 주루사와 9회초 마무리 선동열 상대 무사 2,3루의 절호의 찬스를 놓치며 2:0으로 패해 시리즈 전적에서 1승2패로 역전당했다. 다급해진 빙그레는 다음날 4차전에서 1차전의 영웅 이상군을 3일만 휴식시킨 상황에서 선발로 내세웠지만 무리수였고 결국 김정수가 등판한 해태에 홈런 4방(한대화, 이순철, 김성한2)을 얻어맞고 6:2로 패해 1승3패가 되어 벼랑 끝에 몰렸다. 5차전에서 한희민이 나왔지만 한희민은 시리즈 도중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고 3회까지 백인호에게 2루타와 스퀴즈 번트를 허용하며 4:1로 끌려갔다. 4회말 빙그레가 찬스를 잡자 해태는 끝판왕 선동열을 등판시켰고 결국 5:1로 패하며 빙그레는 한국시리즈를 1승4패로 마치며 2년 연속 준우승을 기록하여 해태의 한국시리즈 4연패의 제물이 되었다.[* 단일리그 체제 이후 한국시리즈 역사에서 정규시즌 우승팀이 2위팀에게 업셋을 당한 최초의 시리즈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